가지에 매달려 사락사락 나무를 간지럽히던 나뭇잎들이 얼굴 붉게 물들이며 지상으로 낙하하는 계절, 파란 하늘 위 높이 걸려있는 구름에 가슴마저 보드라워지는 계절, 가을이다. 불긋불긋한 낙엽 따라 더욱 붉어진 심장이 쿵쿵 거리며 어디론가 떠나자고 속삭이는 요즘, 한동안 메말랐던 감수성에 단비를 뿌려줄 수 있는 통영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통영의 음악, 문학, 역사를 느끼다 보면 가슴 한 켠이 햇빛 가득 머금은 구름처럼 찬란해 진다.
시·음악 운율 따라 흐르는 예술기행
통영은 수많은 예술인들이 배출된 곳이다. 음악가 윤이상, 시인 유치환, 소설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예술가들의 정신이 통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시인 유치환 선생의 생가가 복원돼 있으며 그의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청마문학관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 정량동에 위치한 통영의 관광명소다. 청마문학관은 3개의 주제로 유치환 시인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유치환 시인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청마의 생애’, 그의 시를 시대별로 전시해 놓은 ‘청마의 문학’, 그가 지니고 있던 문예지, 잡지, 작품수록 전집 등을 전시하고 있는 ‘청마의 발자취’까지 둘러보면 유치환 시인이 지녔던 고귀한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청마문학관 관람을 마친 뒤 김춘수 선생의 생가로 발길을 돌려보자. 남망산 공원 입구에 위치한 동산약국 옆에는 김춘수 선생이 살았던 자리에 표석이 설치돼 있다. 해발 72m의 나지막한 남망산 공원에는 세계 15명 조각가들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고, 각종 공연 및 문화행사가 열리는 시민문화회관, 박경리 선생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 영화 촬영 기념비, 유치환 시인의 ‘깃발’이 적힌 비 등이 자리하고 있다. 남망산 공원에서 내려와 청마거리를 따라 조금만 더 걸어가면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생가와 ‘봉선화’, ‘백자부’, ‘사향’ 등으로 유명한 김상옥 시인의 생가를 둘러 볼 수 있다.
한국 서구 근대화의 화풍을 도입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이중섭 화백이 잠시 머물렀던 집도 찾아 볼 수 있다. 이중섭 화백은 통영에 머무르는 동안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충렬사 풍경, 남망산 오르는 길, 복사꽃이 핀 마을 등을 그렸다.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 선생 또한 통영 출신이다. 매년 3월이면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며 윤이상 작곡가의 친구 또는 제자들이 통영에서 그의 곡을 연주해 축제 참가자들은 현대음악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생가 앞 도로인 윤이상 거리에는 통영국제음악제 사무국인 페스티벌하우스가 있다. 축제기간 동안 페스티벌하우스는 테마에 맞게 사무실을 장식하고 윤이상 작곡가와 관련된 기념품을 판매한다. 또한 페스티벌하우스 내 프린지 홀에서는 수시로 작은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통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10대 거장, 전혁림 화백의 미술관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통영 미륵섬에 위치한 전혁림미술관에는 ‘한려수도’, ‘통영 충렬사’, ‘통영의 운하교’ 등 전 화백의 정신이 담겨져 있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역사 발자취 따라 떠나는 문화기행
통영에는 이순신 충무공의 호국의지를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유적지들뿐만 아니라 옛 선조들의 얼과 생활양식을 알 수 있는 민속 문화재도 산재해 있다.
광도면 안정리 벽방산 기슭에는 신라 태종무열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 안정사를 찾아 볼 수 있다. 안정사 내에 위치하고 있는 대웅전, 쾌불, 범종 등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안정사에서 시내방면으로 나오면 광도면 죽림리에 위치한 통영향교에 방문할 수 있다. 1900년에 고성현에서 분리되어 진남군으로 독립한 통영 유림들이 지역의 교육과 조화를 위해 1901년 창건한 것이 통영향교다. 죽림마을 끝에 산을 등지고 위치한 통영향교에 방문하면 조선시대 건축물이 지닌 멋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세병관 맞은편에 위치한 향토역사관에 방문하면 통영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내려오는 길가 왼쪽에 통영시민들이 벅수라고 부르는 돌장승도 구경할 수 있다. 이 돌장승은 동락동 주민들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동남방이 기세가 약하다 하여 세운 풍수비보장승이다.
‘역대상도해’, ‘중용성명도’ 등의 작품들을 저술한 고시완 선생이 가난한 집 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친 서당, 백운서재에 방문해 교육에 대한 고시완 선생의 정신을 느끼는 것도 좋다. 백운서재를 뒤로 하고 미륵산으로 발걸음을 옮겨 용화사에 도착하면 납석제 미륵좌상을 봉안한 용화전, 효봉영각을 차려놓은 명부전, 선실인 적묵당, 탐진당, 해월루 등을 관람할 수 있다.
해안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내려오면 해평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이 마을에는 소설가 황순원의 작품 ‘잃어버린 사람들’의 동기가 된 해평열녀에 관한 이야기와 사당이 전해진다. 해평열녀의 전설이 깃든 곳 옆 봉평동 해안에는 청동기시대의 분묘인 고인돌이 남아있는데, 전라남도와 경상남북도 해안지방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기반식이라 그 의미를 더한다.
봉평동 해안에서 산양일주도로를 따라 미륵도 일대를 돌면 통영의 수산업과 수산물의 발달사를 일목요연하게 전시해 놓은 통영수산과학관이 나온다. 이곳은 바다를 주제로 한 학습장으로 손색이 없으며 과학관 앞에서 펼쳐지는 한려수도의 장관 또한 일품이다.
마지막으로 산양읍에 위치한 삼덕리마을 제당을 관람하며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해보자. 이 제당은 장군당과 천제당 두 채의 건물로 구성돼 있으며, 장군당 안을 들여다보면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장군의 모습이 잘 표현돼있는 ‘발장군신화’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